영화 '시민 덕희' 후기 및 감상평
라미란 배우도 좋아하고, 가벼운 B급 영화가 보고 싶어서 '시민 덕희'를 보러 갔다. '시민 덕희'는 소소한 규모의 한국 영화 특유의 억지 유머가 좀 섞여 있지만, 생각보다 긴장감 있게 전개되는 영화다. 권선징악 결말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지루하게 늘어지는 부분 없이 계속해서 집중하게 만드는 영화다. 오늘은 '시민 덕희'를 실관람한 관객으로서 영화 줄거리 및 후기를 공유해 보겠다.
1. 기본 정보
- 장르: 드라마, 스릴러(???), 액션(은근히 있음), 코미디(아주 약간??)
- 주연: 라미란, 공명
- 조연: 박병은, 염혜란, 안은진 등
- 감독: 박영주 (거의 신인에 가까운 감독이라고 함)
- 특이 사항: 실화 바탕이라는 게 정말 충격적.
2. 줄거리
공장식 세탁소에서 일하는 덕희(라미란 분)는 혼자 두 아이를 키우는 중년 여성이다. 덕희는 한 달 전 화재로 집에 불타버려 오갈 곳이 없는 신세라 대출 심사를 받았는데 요건이 되지 않아 거절당했다. 덕희 전화로 (운이 안 좋게도 덕희가 심사받은 은행 지점과 같은 이름으로...) '00 은행 00 지점 손진영 대리입니다. 얼마 전 은행 대출 심사받으신 김덕희 고객님 맞으시죠?'라는 전화를 받는다. 손진영 대리는 덕희에게 서민들을 위해 자격 요건이 낮은 대출 상품이 나왔다고 덕희에게 권한다. 덕희는 아이들을 놀이방에 맡길 돈도 없어서 지인이 공짜로 맡아주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돈이 아주 급했다. 돈이 아주 절실했던 덕희는 '대출 신청 수수료가 필요하니까 먼저 입금하라'는 말을 그대로 믿고 손 대리가 시키는 대로 서류를 준비해서 보내고 바로 계좌에 돈을 입금했다. 그런데 여러 번 무슨 절차 때문에 돈이 더 필요하다고 해서 사채까지 써서 3,200만 원의 돈을 입금하게 된다. 덕희는 뭔가 이상한 것을 확인하기 위해, 곧바로 은행 지점에 갔는데 전화상 남자 목소리였던 손진영 대리는 여자 직원이었고 자신은 그런 전화를 한 적 없다며 어리둥절해한다. 은행 직원들은 자기들은 원래 고객에게 입금을 요청하지 않는다며 보이스피싱으로 신고하라고 한다. 충격을 받고 쓰러지는 덕희. 경찰에 신고했지만, 가짜 핸드폰, 대포 통장이라 박 형사(박병은 분)는 총책을 잡지 않는 이상 돈을 다시 돌려받을 수 없다고 한다. 총책을 잡는 건 서울 본청도 못한 큰 일이라고 하며 수사를 종결시킨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100억대 사기 사건이 터져 해당 경찰서가 아주 박 터지는 상황이라 덕희는 재수사해달라고 했지만 박 형사는 어쩔 수 없다고 거절한다.
덕희에게 전화로 사기 쳤던 '손 대리'는 권재민(공명 분)이라는 20대 청년인데, 중국에 체류하던 중 시급 높은 알바가 있다고 해서 갔다가 조폭들한테 폭행당하고, 알몸 동영상이 찍혀 감금 당해 보이스피싱 조직의 콜센터 직원(조직의 제일 말단)으로 일하고 있다. 조폭들은 취업 사기로 젊은 청년들을 감금해 자기들이 시키는 대로 안 하면 폭행하면서 보이스피싱 콜센터 일을 시키고 있었던 것. 권재민은 맨날 강압적으로 감시당하고 처맞는 것이 지겨워 탈출하려고 하지만, 탈출하다 걸리면 진짜 죽을 수도 있어서 못 하고 있다. 결국 참다못한 권재민은 자신이 콜 했던 고객 중에 가장 돈을 빨리 보내준 덕희가 추진력이 제일 좋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보이스피싱 하는 척 덕희에게 전화해 구해달라고, 조직에 대해 제보하겠다고 전하게 되는데...
(영화 시작하자마자 나오는 매우 매우 앞부분의 줄거리)
3. 감상 & 후기
장점
(1) 전개가 빠르다.
내가 위에 설명한 줄거리 첫 문단은 거의 영화 시작하자마자 5분도 안 되어서 다 끝나버린다. 불필요한 장면들이 길게 나오지 않고, 덕희가 보이스피싱 당한 이후부터 영화는 시작한다. 실제 영화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내용은 경찰이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자신에게 전화로 제보했다는 말을 안 믿어줘서 열받은 덕희가 친구들과 함께 직접 중국으로 날아가서 총책을 잡는 이야기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싶은데 당연히 말도 안 되게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어려움과 난관에 부딪치게 된다.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시간을 질질 끌지 않게 빠르게 지나가서 지루하지 않게 흥미롭게 볼 수 있다.
(2) 뻔한데 슬프다.
이 영화를 예매하면서 엄청나게 독창적인 영화를 볼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보통은 우리가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뻔한 웃음, 뻔한 권선징악이 나올 것을 예상한다. 사실 나는 뻔한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해서 이 영화를 보러 갈지 말지 좀 고민했다. 그런데 진부한 클리셰지만 아이들에 대한 절실함을 가진 엄마는 언제나 눈물샘을 자극한다. 나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이 불쌍하긴 하지만 '왜 당할까? 왜 의심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좀 있었다. 그런데 사기라는 게 역설적으로 풍족한 이들보다 절실한 사람들이 더 취약한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 궁지 끝에 내몰린 사람들의 마음과 분노, 억울함, 자괴감,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을 내 손으로 지키겠다는 미친 생존 의지에 공감이 갔다.
(3) 보이스피싱 조직 나오는 장면들이 정말 무섭다.
이 영화는 보이스피싱 조직이 나오는 비중이 크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보이스피싱 하는 조폭들이 정말 지능적이고 체계적인 것 같다. 그리고 내부적으로 서로 신상을 알지 못하게 하고, 끊임없이 서로 감시하고 도망가지 못하게 만드는 시스템까지 만들어 놨다. 범죄와 관련된 내용이 나오는 영화 중에 조폭들이 웃기고 인간적으로 나오는 영화들이 많은데 여긴 정말 무섭게 표현된다. 액션도 액션 영화 같은 느낌보다는 정말 잔인하고 비열하게 묘사된다.
단점
(1) 코믹 액션 영화일 줄 알았는데 그것과는 조금 다른 장르. 그리고 별로 안 웃기다.
포스터의 느낌, 그리고 코믹한 연기를 잘하는 라미란 배우가 주인공이다 보니 당연히 코믹한 영화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깔깔깔 웃기는 장면은 거의 없다. 물론 중간중간 웃기려고 넣은 장면들이 있긴 하다. 덕희의 친한 동생 숙자(장윤주 분)가 영화의 웃음을 담당하고 있는 가벼운 캐릭터인데, 사실 숙자가 제일 안 웃기다. 좀 오버스럽다. 이 영화는 생각보다 잔인한 장면이 많이 나온다. 가족들끼리 가볍게 보는 명절 코미디 느낌의 영화인 줄 보고 가면 생각했던 장르가 아니라 그런 영화를 보러 갔던 관객들은 당황할 수 있다. 하지만, 일장일단인 것 같다. 내가 앞서 언급했듯 이 영화의 장점은 생각보다 긴장감 있고 무서운 영화라는 점이다. 게다가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가볍고 재미난 분위기가 아닌 게 자연스러울지도 모른다.
(2) 맨 끝부분이 약간 허술하다.
이 영화에서 캐릭터들은 허술하지 않다. 내 리뷰만 봤을 때는 '아무리 보이스피싱 당했다고 해도 진짜 잡으러 쫓아가는 사람이 있다고? 그걸 또 도와주는 친구들이 있다고?' 싶겠지만 이 영화를 막상 보면 덕희는 그럴만한 인간이다(...). 그리고 영화에서 짧게 나오지만 덕희가 친한 친구들이 도와주고 싶을 만큼 평소 의리를 보여준, 진심으로 좋은 사람이라는 것도 충분히 느껴진다. 그리고 전반부~중반부까지 덕희 무리가 총책을 잡는 과정-재민이 계속 덕희에게 제보하려는 과정이 단계적으로 잘 빌드업되어서 보인다.
그런데 맨 끝 부분만 좀 허술하다(관객들은 무슨 장면인지 알겠죠.). 스포일러라 말하긴 그렇지만 좀 '오잉?' 하긴 했다. 중후반부까지의 재미에 비해 결말이 급하게 마무리되는 느낌이다.
총평
난 이 영화를 보고 가장 크게 느낀 게 바로 덕희의 넘치는 생존 의지를 본받고 싶다는 점이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관점으로 몰입을 하게 되지 않는가. 내가 덕희였다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어쩔 수 없어서, 일이 너무 커질까 봐 무서워서 몇 번이고 포기했을 것 같다. 근데 덕희는 무조건 자기한테 닥친 문제를 헤쳐나가는 것밖에 모른다. 얼마나 가능성이 높나, 따지지 않고 무조건 행동한다. 그리고 덕희의 행동력처럼 이 영화의 흐름도 거침없다. 나는 쓸데없는 생각과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라 나와 정반대인 덕희의 용기에 마음이 움직였다.
내 문제는 내가 해결하겠다는 미친 생존력의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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