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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드라이브 마이 카 (하마구치 류스케 연출) 감상평 후기

by Forest Park 2024.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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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마이 카' : 오랜 상처를 다시 마주하기까지의 여정

최근 박유림 배우가 좋아져서 그녀가 조연으로 출연했다는 '드라이브 마이 카'라는 일본 영화를 봤다. 이 영화는 일본 대표 감독인 하마구치 류스케의 작품인데,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칸 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했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긴 시간 동안 고통과 슬픔을 직면하지 않고 속으로 삼켜온 한 남성이 그 상처를 똑바로 들여다보기까지의 여정을 담고 있다. 영화는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기 때문에, 장단점 각각 세 가지에 대해 정리하였다.

드라이브 마이 카
드라이브 마이 카 내돈내산 티켓 인증

1. 줄거리 

(스포일러 NO, 프롤로그까지의 내용)

연극 배우 겸 연출가 가후쿠 유스케. 그리고 그의 아내는 배우 출신 드라마 작가 가후쿠 오토. 두 사람은 금슬도 좋고 서로 많이 사랑하는 부부다. 두 사람은 200x 년에 4살 된 딸을 먼저 보낸 슬픔을 함께 겪었다. 큰 슬픔으로 방황을 했던 오토는 배우를 그만두고 드라마 작가 일을 하게 된다. 오토는 유스케와 부부 관계를 가지면서 생각나는 이야기를 즉흥적으로 말하는 습관이 있는데, 부부 관계가 끝나면 그때의 기억을 잘하지 못한다. 그래서 유스케는 오토가 했던 대사와 줄거리들을 다시 이야기해 주는데, 보통은 차 안에서 오토가 이야기했던 대사를 이야기해 준다. 유스케는 배우 겸 연출가이다 보니 늘 대사를 연습해야 하는데, 오토랑 차 안에서 출퇴근할 때 대사를 확인하는 습관이 있다.

유스케가 어느 날 눈이 침침해 병원에 갔는데 한쪽 눈에 녹내장이 생겼다고 한다. 나머지 한쪽 눈의 시력 때문에 녹내장이 생겼다는 게 체감이 잘 안 되지만, 서서히 한 쪽 눈이 실명할 것이라고 의사는 말한다. 녹내장은 불치병이라 완치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당장 실명되는 병은 아니고, 매일 정해진 시간마다 안약을 넣으면 병을 늦출 수 있다고 한다.

유스케는 해외 연극제에 초청되어 출국하러 공항에 갔는데, 공항에 도착하자 마자 주최 측에서 일정이 미뤄졌다고 메일이 온다. 유스케는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가, 아내의 불륜 현장을 목격한다. 아내와의 행복한 결혼 생활과 평온한 일상을 깨기 싫었던 유스케는 못 본 척 조용히 문 닫고 나간다. 유스케는 공항 근처 호텔에서 머물면서 아내에게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해외 호텔에서 연락하는 것처럼 화상 대화를 한다.

이후 일본에 돌아와 유스케가 연극을 하는데, 아내는 드라마에 출연하는 남자 배우 다카츠키(불륜 상대)를 백스테이지에 데려오고, 다카츠키는 유스케의 공연을 보고 감명받았고 유스케를 존경한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유스케에게 다정하고 잘해주는 오토. 유스케가 출근하는 어느 날, 오토는 유스케에게 오늘 저녁에 할 말이 있다고 한다. 유스케는 왠지 그 말이 찝찝하게 느껴져 미적미적거리면서 늦게 퇴근한다. 집에 돌아오자 아내는 거실에 쓰러져 있었고, 뇌출혈로 갑작스럽게 사망한다. 그리고 2년 뒤...

 

장점

(1) '드라이브 마이 카'는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미묘한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어떠어떠한 느낌, 어떠어떠한 기분... 이런 단어로 명확하게 표현하기 힘든 '께름칙하고 찝찝하고 불안하고 미묘하게 불행한 느낌'을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게 영화화한 영화는 처음 본다. 이 영화는 오랫동안 누적된 고통, 그리고 옅어지기는커녕 점점 더 꼬여서 무겁게 짓누르는 고통을 잔잔하게 표현했다. (감독은 정말 변태가 아닐까?) 유스케와 오토는 자식의 죽음이 너무 충격적인 일이다 보니 서로 그 일에 대해서는 별 말 안 하고, 서로에 대한 상처를 바닥까지 내보여주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영화를 보면 유스케가 오토를 정말 정말 아끼고 사랑한다는게 느껴지는데, 유스케는 오토를 너무 사랑하고 자기가 살아온 일상의 행복을 잃고 싶지 않아서 불륜도 눈 감아준다. 겉보기에는 유스케가 오토를 평소와 똑같은 것처럼 대하지만, 사실 유스케의 마음은 곪아갔고 오토는 반대로 아무렇지 않은 하루하루가 오히려 더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다. 살면서 눈 앞에 고통을 회피하다가 오히려 더 오랫동안 상처 받은 적이 한 번쯤은 있지 않은가? 너무 아파서, 너무 소중해서, 내 자신 스스로 인정이 안돼서 중요한 문제를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했던 일들이 스쳐 지나간다. 남들에게 솔직하게 꺼내놓을 수 없기 때문에 혼자 조용히 묻어두고, 그 내면의 고통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던 순간이 있었는데. 이 영화는 그동안 세상 밖에서 표출되지 못한 응어리를,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느끼게 해 준다.

 

(2) 일본 특유의 정서를 담아낸 영상미가 아름답다. 나는 일본 여행을 다녀오기 전에, 일본에 대한 환상이 있었는데 실제로 오사카 여행을 다녀오고 도시 경관이 너무 구리고 한국인 관광객들 바글바글해서 환상이 완전 박살 난 적이 있었다. 근데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풍경은 딱 내가 일본 여행 가기 전 상상했던 정감 있는 일본의 풍경 그대로다. 화려한 색감 보정이나 빛을 많이 쓴 영화가 아닌데도, 필터 카메라로 찍은듯한 감성이 녹아있다. 제일 인상 깊었던 장면은 유스케와 미사키(프롤로그 뒤 실제 영화 내용상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유스케의 운전기사) 차를 타고 미사키의 고향에 갔던 장면. 한적한 마을과 도로, 눈 쌓인 언덕. 겨울 홋카이도의 설경은 눈에 폭 감겨 아름답다. 

 

(3) 배우들의 연기가 좋다. 일단 오토 역을 맡은 키리시마 레이카는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사랑하지만, 불륜도 하는' 캐릭터를 잘 살렸다. 사실 그 두 가지 속성이 모순적인데, 키리시마 레이카가 '남편에 대한 사랑'과 '다른 남자들에 대한 갈망' 어느 것 하나 치우쳐지지 않게 연기해서 '아, 저 사람 원래 저런 사람이구나'라는 느낌이 절로 든다. 유스케는 나를 열정적으로 사랑하면서 다른 남자도 탐닉하는 아내의 모순에 납득하지 못하는데, 영화에서 오토가 진짜 유스케를 너무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유스케의 혼란스러운 모습이 이해가 간다. (즉 관객이 봐도 오토가 유스케를 사랑했던 건 거짓이 아닌 게 느껴진다는 뜻. 연기 애매하게 했으면 오토도, 유스케도 되게 이상한 사람 같았을 듯.) 두 번째로, 운전기사 미사키 역할을 맡은 미우라 토코의 연기가 좋았다. 개인적으로 유스케가 겪은 일(자식의 죽음, 배우자의 불륜)은 현실에서 종종 발생하는 부류의 불행이라고 생각하는데, 미사키가 겪은 불행은 상대적으로 드문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이나 엄마와의 관계, 홋카이도에서 히로시마로 오게 된 이유 등등이 작가가 대놓고 미사키와 유스케가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끼고 서로 위로하라고 판 깔아주는 설정이긴 하다. 이런 다소 서사 몰빵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미우라 토코가 절제되고 건조한 연기를 보여줘서 작위적인 느낌이 들지 않았고, 미사키가 앞으로 잘 살길 응원하는 마음으로 보게 됐다.

 

단점

(1) '드라이브 마이 카'는 관객에 따라 주인공 성격 때문에 호불호가 엇갈릴 수 있다. 주인공 가호쿠 유스케에 공감이 갔던 나와 달리, 같이 본 남편은 이 영화가 매우 답답했다고 했다. 그 이유는 주인공 성격이 너무 답답한 회피형이기 때문이라고. 유스케의 성은 '가호쿠'. 가호쿠는 일본어로 '가정을 지킨다(정확히는 기억 안 나는데 대충 이런 뜻이었다고 대사에서 언급)'는 뜻. 가호쿠 유스케는 가정의 틀을 깨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고, 아이를 잃었던 상실감이 컸던 만큼 아내까지 잃기 싫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런 걸 다 감안하고 봐도 불륜 현장을 목격하고도 현관문 닫는 소리 안 들리게 조심조심 나가는 것은 레전드 하남자 행동이기는 하다. 내 감정을 많이 참는 나와 달리 남편은 불같은 성격이라 그런지 도통 공감이 안 갔던 모양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영화는 도대체 솔직한 사람들이 한 명도 안 나온다고, 특히 남자 주인공이 너무 답답해서 속 터지는 영화라고 평했다.

 

(2) 이 영화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희곡 '바냐 아저씨'를 알아야 할 것 같은데, 잘 모르는 희곡이라 아쉬웠다. 내가 앞에 줄거리 요약에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프롤로그까지 이야기해서 그런데, 사실 이 영화의 중심 내용은 히로시마 국제 연극제에서 상연할 '바냐 아저씨'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배우들의 오디션, 대본 리딩 과정, 연기 연습 과정이 길게 나온다. '바냐 아저씨' 대사 중에서는 '내 아내는 정숙하지 못한 여자'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대사를 스스로 치는 게 고통스러웠던 유스케는 (바냐 아저씨 배역을 맡을 것이라는 세간의 기대를 엎고) 연출을 맡고 배우들을 훈련시킨다. 유스케는 배우들이 지겨워할 때까지 반복해서 대본 리딩을 시키는데, 느낌상 배우들이 맡는 배역과 대사가 영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 같긴 한데, 내가 이 희곡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대강의 느낌만 파악할 뿐이었다. 바냐 아저씨는 인생이 여러모로 잘 안 풀린 사람인데, 소냐라는 여자가 바냐 아저씨를 위로해 주는 내용인 듯하다. '오토가 창작한 드라마 줄거리, 유스케의 인생, 미사키의 인생, 바냐 아저씨 희곡' 무려 네 가지 이야기가 사실은 연결되는 이야기라 바냐 아저씨를 읽지 않아도 아예 이해가 안 되는 정도는 아니나, 디테일하게 대사가 상황에 탁탁 들어맞는 쾌감을 느끼려면 바냐 아저씨를 영화 보기 전에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3) 주제의식에 대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엔딩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임팩트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영화 관람을 권하며 직접적인 설명은 피하겠다. 다만, 우회적으로 설명하자면 이 영화는 엄청 희망적인 위로를 전하는 영화는 아니다. 그렇다고 그동안 직접적으로 대면하지 못한 상처를 다 끄집어내서 '우리 앞으로는 다 꺼내놓고 솔직하게 살자!'라는 교훈을 전파하는 영화도 아니다. 이 영화는 우리가 살면서 앞으로도 많은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고, 그동안 받은 상처가 앞으로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그것들을 감내하면서 내가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 수밖에 없다고 전한다. 나는 내가 원래 냉소적인 사람이라 그런지 관조적인 이 영화의 위로 방식이 좋았다. 그래서 '바냐 아저씨'도 나중에 꼭 읽어보고 싶고, 엔딩 장면도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제일 최선의, 생동감 넘치는 위로로 느껴졌다. 그런데 남편은 역시나 불 같은 사람이라 그런지 '그런 체념은 싫다!'라고 전했다. 관조적인 삶의 태도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선호되지 않는 영화의 결말일 수도 있음을 참고 바란다.

 

총평

서서히 문드러지지만 썩지 않고 견뎌내는 사람들에 대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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