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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텍스트로 만나는 조경 : 13가지 이야기로 풀어본 조경이란 무엇인가 / 조경 책 추천

by Forest Park 2023.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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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로 만나는 조경 리뷰 / 조경 교양 도서 추천

고정희 외 13인 저, 나무도시, 2007년

"텍스트로 만나는 조경"은 '조경은 나무를 심는 일'이 전부라고 믿는 일반인들의 얕고 빈곤한 인식을 넓히고, 잡지 '월간 환경과 조경' 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조경 에세이집이다. 조경의 역사, 구체적인 공간, 조경의 특성과 재료, 조경가의 역할 등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다.

텍스트로 만나는 조경
텍스트로 만나는 조경

1. 요약

먼저, 조경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요약한다. 서양 근대 조경사를 르네상스 이후의 유럽 정원사를 중심으로 요약하고, 동양의 전통 조경사를 한중일의 정원이 '자연을 어떻게 표현하는가'를 중심으로 정리한다. 다음으로 조경의 구체적인 공간들을 살펴본다. 조경은 도시 경관에 큰 영향을 미치며, 공원과 가로 및 광장, 골목길 등 일상의 풍경을 이루는 '삶을 담는 그릇'이다. 조경의 성격과 조경가의 역할도 고찰한다. 조경은 자연과의 조화, 예술성과 공공성을 추구한다. 조경가는 단순히 '배경'이 아니라 그 안에서 유의미한 활동을 발생시키는, 이용자와 함께 호흡하는 '장소'로서의 조경을 추구한다. 조경가는 예술과 과학을 모두 어우르는 창조가이며 건축, 토목, 생태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 사이에서 코디네이터 역할을 할 수 있다. 조경의 재료는 무궁무진하므로 조경가라면 재료의 물성과 새로운 재료에 관한 탐구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그 외 선유도 공원, 올림픽 공원 등 국내외의 주요 현대 작품들을 공원 중심으로 리뷰한다.

2. 책의 장점 및 의의

이 책은 역사, 디자인, 사회 참여 등 조경의 다양한 측면을 다루고 있어 조경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 지평을 넓힐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사회 문제 해결, 도시 구조 개편, 환경 예술 등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조경의 기능들을 사례를 통해 제시한다. 지역 재생에 기여한 엠셔 파크, 지역의 역사성을 창조적으로 보존한 선유도 공원, 독창적인 대지 예술을 담은 빅스비 파크 등의 예시를 들면서 조경의 사회적 기능과 참신한 예술적 도전을 두루 다루었다. 다만, 저자들이 주로 설계나 비평 쪽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 조경의 공학 및 자연 과학적 측면은 많이 다루지 않아 아쉽다.

한편 조경계에 몸담은 사람들에게는 담론이 부족한 조경계를 다시 돌아볼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책이다. 국내 조경계에 '디자인만 잘하면 된다'는 식의 '이론 무용론'이 팽배한 편이다 보니, 결과물과 과정에 대한 비평과 담론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왔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비판의 공유를 저해할 수 있다. 담론은 단순히 현학적 이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조경가들의 세계관을 넓혀주고, 고정관념을 깨 주는 역할을 하며,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디자인의 혁신으로 연결된다. 역사적으로도 옴스테드의 공원에 대한 비판 담론들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이분법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고, 디자이너들은 '자연=선, 도시=악이라는 이분법은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고립시키는가?', '변화하는 사회에서 여전히 자연은 고립된 피난처 역할만 할 것인가?'와 같은 질문들을 새로운 디자인 전략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도시를 자연(공원)에 투영한 베르나르 추미의 라빌레트 공원이 나왔고, 더 나아가 도시와 자연이 경계를 허물고 통합을 지향하는 제임스 코너의 다운스뷰 파크가 나왔다. 이처럼 기존의 인식을 허물고 새로운 철학으로 무장할 때 획기적인 발상이 전환이 나온다. 조경을 단순 미화라고 생각하는 일반인들의 단편적인 생각을 깨고 싶다면, 조경인들이 먼저 조경의 철학, 사회적 함의, 생태적 기능과 예술성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논의하며 조경의 진화를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국내 여러 조경가들의 비평과 해설을 담았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의의가 있다.

이 책의 장점은 자연에 대한 관념적인 생각에 매몰되지 않고 자연의 다양한 측면을 다루었다는 것이다. 조경에 대한 통념과 기존 논의가 '자연=선, 자연이 도시를 치유한다'는 자연에 대한 신화적 믿음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역설적으로 자연을 생동하는 생명이 아닌 대상화된 그림으로 박제해 버리고, 우리의 삶으로부터 자연을 분리한다. 이 책은 자연을 단순히 아름답고 전원적인 풍경화라는 이미지로 고정시키는 것을 경계하고, 자연의 다양한 모습을 말하고 있다. "자연은 아름다운 자태나 맑은 향기를 가진 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가진 동등한 자연의 구성체"이며 "때로는 바짝 마르고 비틀어진 처절한 모습까지 띠고 있다"라고 말한다. 또한, 자연의 원시적인 모습을 통해 삶과 죽음을 표현한 우드랜드 공동묘지, '생태공원'에 대한 틀에 박힌 이미지를 탈피해 푸른 교목 하나 심지 않고 초화류만을 식재한 빅스비 파크를 통해 관념적 자연미를 깨버린 작품들을 제시한다. 선유도 공원이 전원적인 풍경화 같은 자연이 아닌, 소멸하고 쇠퇴하며 다시 성장하는 자연의 "시간성"을 표현한 점을 반복해서 높게 평가한다. 이러한 논의는 자연의 다채로운 측면을 다룸으로써,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독자의 시야를 넓힐 수 있을 것이다.

3. 책의 한계

그러나 이 책은 공동체에 대한 낭만주의적 환상을 품고 조경과 공동체에 대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고찰해보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마을 공동체의 공유 공간 역할을 했던 골목길이 지금은 사회 변화에 따라 과거의 기능을 잃은 것"을 지적하며, "공동체 문화의 미덕을 조경이 다른 형태로 풀어나가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골목길의 커뮤니티 기능, 나아가 마을 공동체의 커뮤니티 기능이 왜 사라졌는가에 대한 이유를 깊이 있기 성찰해보지는 않는다. 과거의 마을 공동체 문화의 장단점을 두루 검토하지 않고 뭉뚱그려서 "사람냄새, 인정" 등의 표현으로 대충 넘어가버린다. 공동체 문화가 미더운 가치를 지닌 것을 별다른 논거 없이 당연히 전제하고 있는데, 이러한 주장에 대한 논거를 보충했으면 한다. 왜냐하면, 과거의 공동체가 긍정적 기능도 있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간섭한다거나 불필요한 감정적 마찰을 겪어야 한다는 단점도 있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가치관이 많이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마을 공동체 문화가 도태되었을 수도 있다. 마을 커뮤니티 기능을 다시 원하고 필요로 하는 수요가 지역에 있는지부터 먼저 살펴보아야 하고, 마을 공동체에 대한 다양한 이해관계가 공존할 수 있음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공공성에 대해 높은 가치를 두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사적 공간이 가진 가치와 가능성에 대해서는 깊게 다루지 않은 한계가 있다. 특히, 정원의 가치를 낮게 보고, 정원과 조경 사이에 자꾸 거리를 두려는 점을 비판하고자 한다. 조경의 본질에는 공공성이 있으며 사적인 공간보다 공적인 공간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고, 사적인 정원은 소수를 위한 비민주적 공간으로 낮게 평가한다. 물론 조경의 공공성에 대한 고찰은 필요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공간은 그만큼 심도 있는 고민과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공간의 가치를 스케일이나 이용자 수 등의 잣대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편협하다고 볼 수 있다. 정원은 근대 조경이 시작되기 전 오랫동안 조경의 기반이었으며 현재는 중요한 조경사적 소산이다. 과거의 사적인 정원이었던 빌라 에스테, 베르사유 정원 등은 지금은 문화재이자 세계적인 관광지이다. 한편, 오히려 정원이 소수를 위한 사적인 영역에 있어서 다른 공공 공간에서 얻지 못하는 경험을 제공하기도 한다. 공원과 광장 등에서는 주로 관조하는 시작적 경험이 우세하지만, 정원은 보통 집주인이 직접 식물을 가꾸고 관리하기 때문에 육체적 경험이 수반되고, 오랫동안 시간을 할애하는 만큼 보다 더 자연과 소통하고 애착을 느끼는 경험을 갖게 된다.

더 나아가 '정원이 사적 공간이라고 해서 그것이 주는 혜택이 사적인 이익으로 끝나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① '쇼가든(show garden)'은 조경가들이 실험 정신을 바루히할 기회의 장이고, 이러한 실험적 시도들이 조경계의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② 개인 정원을 통해 집주인이 느끼게 되는 '자연에 대한 친숙함', '자연에 대한 사랑' 등이 개인의 정신적 수양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자연친화적 정원문화가 많이 퍼진다면 소소하게나마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거시적인 사회구조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더 우세하더라도, 개인의 정신과 미시적 행동이 사회에 주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③ 집과 인접한 보도, 골목길 등 반(半) 사적 공간이 있기 때문에 개인 정원의 경관 역시 다른 시민들의 시야에 영향을 미친다.

궁극적으로 사적 공간의 해체 가능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던질 수 있다. '과연 사적 공간은 고정적인가?' 즉,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경계가 이분법적으로 성립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 전통 조경에서 마당은 노동의 공간인 동시에 마을 잔치 등이 일어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또 다른 예로 오늘날의 집은 주부와 재택 근무자들에게는 사적 공간인 동시에 노동과 생산을 하는 공적인 공간일 수도 있다. 공간의 내부와 외부 역시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자하 하디드의 엘에프원은 건물의 외부와 내부의 경계를 흐릿하게 함으로써 랜드스케이프와 건축을 통합하였으며, 딜러 스코피디오는 블러 빌딩에서 기체와 액체를 이용해 건축의 외피를 만들어 가변적인 외부와 내부를 가진 공간을 창조하였다. 따라서, 조경 공간에서 공공성을 추구하는 태도가 과도하여 사적 공간의 가치와 가능성을 축소한다면,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통합 가능성을 간과해 버리는 문제를 낳을 것이다.

4. 총평

끝으로 조경이 무엇인지 두루 알고 싶은 일반인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며, 개인적으로 국내외의 다양한 사례들을 글과 사진으로 감상할 수 있어 유익하다고 느꼈다.

 

참고문헌

  1. 배정한(2007). 「조경의 시대, 조경을 넘어: 배정한 조경비평집1」. 파주:도서출판 조경.
  2. 배정한(2004). 「현대 조경설계의 이론과 쟁점」. 파주:도서출판 조경.
  3. 월간 <환경과 조경> 편집부(2006). 「PARK_SCAPE: 한국의 공원」. 파주: 도서출판 조경.
  4. 조정송 외(2006). 「조경·미학·디자인」. 파주:도서출판 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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