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들과 함께 일할 때 유용한 팁, 주의사항
건축/조경, 환경, 건설 분야에서는 일의 특성상 지자체 공무원들과 함께 일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 많습니다. 보통은 대상지가 지자체 소유이기 때문에 공사를 하거나 지역에 대한 연구를 할 때 지자체와 협업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공무원들은 보통 관리자 입장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일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무원들과 함께 일할 때는 효율적인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은 각각 학생들과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공무원들과 협업할 때 주의해야 하는 사항 5가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학생/직장인들을 위한 공통된 팁
① 자료 요청/단순 질문 Tip
- 적극적으로 담당자를 찾아 전화해라 - 메일을 보내면 거의 답장하지 않는다. 그냥 바로 여기저기 전화해서 물어보는 것이 빠르다.
- (대충 눈치로 사기업인 것을 상대방이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 상황) - 대학원생이라고 해라. 무슨 과제를 위한 것이냐고 하면 개인 학위 논문 쓸 때 자료가 필요하다고 하면 된다.
연구/개발 업무를 하다 보면 누구에게 물어보기 애매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에 공개된 데이터 포털의 자료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사항들이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적극적으로 물어봐야 되며, 지자체와 관련된 일이라면 지자체 공무원들에게 전화해서 직접 물어봐야 합니다. 연락처는 지자체 홈페이지를 검색하면 알 수 있습니다. 메일을 보내면 거의 답장하지 않습니다. 물론 전화로 물어본다고 해서 다 대답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메일보다는 성의 있게 대답해 줍니다. 예를 들면, 저는 개발 업무를 하다가 낙엽 처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지 궁금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논문, 뉴스 기사 등 어디에도 자세히 구체적으로 나와있지 않습니다. 결국 여러 지자체의 관련된 과(녹지과, 환경과, 청소과 등)에 전화해서 몇 번 물어보면서 지자체마다 처리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귀찮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보통 연구를 하는 사람인데 궁금한 점이 있다고 하면 아는 선에서 대답해 줍니다. 그리고 혹시 지자체에서 갖고 있는 통계 자료나 보고서 등이 있냐고 물어볼 수도 있습니다.
2. 직장인들을 위한 팁
② 공사 현장 보고 Tip
- 상대방이 상사에 보고하기 좋게 정리해 줘라 - 매일 아침 회의 전에 상대방이 현장 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간략하게 메시지 남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 보고하기 좋은 시간: 8시 45분
건설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의 경우, 발주처가 지자체인 관급 공사를 맡을 때가 있습니다. 공무원들은 실무자가 아니기 때문에 실무 담당자가 공사 진행 사항에 대해 잘 정리해 줘서 자주 보고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보고할 때는 나의 입장에서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읽고 이해하기 좋게 작성하여야 합니다. 특히 공무원들은 상사에게 보고해야 하기 때문에 그 사람 입장에서 보고 하기 쉬운 형태로 작성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아침 회의를 하는 부서들이 많기 때문에 아침 회의 때 상대방이 보고하기 편하도록 아침 8시 45분쯤 간략한 메시지를 남겨주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③ 미팅/회의 Tip
- 만나기 전에 오늘 만나는 사람의 이름, 소속, 직함에 대해 확인해라. - 특히 승진했을 수도 있으니 직함을 잘 확인하는 것이 좋다.
- 한 두 명 정도 더 회의에 참석할 수 있으니 여분의 회의 자료를 준비해라.
- 항상 회사의 사업 내용을 소개할 수 있는 자료를 지참한다(PDF 자료, 리플릿 등).
- 인사이동 관련 - 새롭게 부임한 사람에게 인사, 뭐 하는 회사이고 그동안 진행된 내용에 대하여 설명한다. 반대로 오랫동안 같이 일한 사람이 다른 지자체로 가버렸을 경우에도, 이동한 사람과 미팅을 하여 새로운 지자체와도 협력할 수 있는 접점을 만든다.
- (영업할 때) 상대방이 관심 없어해도 상처받지 않는다. 관심 끄고 바로 다음 지자체에 영업하러 간다.
- (지자체와 지속적인 협업이 필요한데 아는 사람이 없는 경우) 지역거점국립대 교수들 중에서는 해당 지자체와 같이 일을 많이 해본 사람들이 많다. 건너 건너 교수님을 통해 미팅을 가져본다.
3. 대학생, 대학원생들을 위한 팁
④ 연구 용역 과제 Tip
- 가급적으로 연구 용역 과제를 하지 말아라.
- 연구 용역 과제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납품 내용 및 포맷에 대하여 명료하게 협의해라.
- (갑질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 나의 부서장한테 적당히 처내달라고 요청해라.
- 회의할 때마다 회의록을 작성해라.
연구 용역 과제 관련 팁을 알려준다고 하면서, 최대한 연구 용역 과제를 하지 말라고 하니 조금 어이가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정말 그게 가장 중요한 팁입니다. 연구 용역 과제는 다른 R&D 연구 과제에 비해 단점이 많습니다. 첫 번째는 공무원들이 자신들의 일(공문 작성, 회의 자료 작성, 발표 PPT 만들기)을 연구원들에게 많이 부탁하기 때문에 잡무가 많이 생깁니다. 둘째, 용역 기간이 지났는데도 부족한 점이 있다고 하면서 AS 요청을 계속해서 질질 끄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셋째, 용역 과제의 연구 성과에 지자체 장 이름을 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넷째, 용역 과제 기간 동안 연구원이 과제와 관련해서 개인적으로 연구한 성과물(논문, 포스터 등)을 발표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랩실 업무 분장 시 나의 의견을 내놓을 수 있다면, 지자체 용역 과제 말고 다른 과제를 맡고 싶다고 어필하시길 바랍니다. R&D 과제를 하는 것이 더 좋은 데이터를 얻을 확률이 높고, 더 좋은 연구 성과를 내 이름으로 발표하기 편하며, 남의 일을 대신해 줄 가능성을 사전에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연구 용역 과제를 맡게 되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미 맡았기 때문에 그냥 받아들이고 열심히 해야 합니다. 연구 용역 과제 초기 시점에 납품 내용 및 포맷/형식에 대하여 공무원과 아주 명료하게 협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나중에 다른 형식으로 해달라고 해서 일을 한 번 더해야 하는 수고를 덜어낼 수 있습니다.
또한, (어느 분야나 그렇듯이) 공무원들 중에서도 가끔씩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의 지인은 정말 성격이 이상해서 남에게 갑질하면서 스트레스 푸는 공무원이 담당자인 연구 용역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담당 공무원이 얼마나 이상한 사람이었냐면, 아주 사소한 내용도 자신은 컴퓨터 화면으로 글씨를 읽는 것이 불편하다고 문서를 다 제본 떠서 직접 방문해 달라고 했습니다(이메일, 우편 다 거부). 그래서 반년 간 50번 정도 서울에서 울산까지 문서를 전달하러 제본 떠서 갔다고 하는데요. 이런 사람들은 주로 나이가 어리고 연차가 낮아 보이며 착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무리한 요구사항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은 내가 속해 있는 회사에서 나보다 높은 사람이 그 공무원에게 그런 일은 시키지 못하도록 말해놓는 것입니다. 나의 상사에게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지 호소해야 합니다. 불평불만 없이 묵묵히 내가 알아서 처리하면 호구가 될 수 있습니다.
연구 용역 과제를 할 때 공무원들이 회의록을 종종 달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 미리 회의록을 써놓지 않으면 기억을 더듬으면서 다시 써야 하기 때문에 회의할 때마다 늘 회의록을 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⑤ 설계 공모전 Tip
- 대화할 때마다 녹음해라
- 업체가 끼기 전에 본인들이 하는 일의 경계를 명확히 해라 - 공무원과 용역 업체가 직접 컨택하지 못하게 해라.
건축학과, 조경학과 대학생들의 경우 학생 대상 설계 공모전에 당선되어서 지자체와 함께 일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서울시와 한화가 함께하는 '72시간 도시생생 프로젝트'에 당선되면 실제 대상지에 설계안을 시공해야 하기 때문에 지자체 공무원들과의 협업이 필요합니다. 대학생들의 경우 아직 회사에 다녀본 적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와 연락하고, 회의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 자체가 매우 생경하고 어려울 것입니다. 저 역시 대학생 때 그러했는데요. 저의 개인적인 경험에 비춘 팁을 드리자면, 공무원들과 대화를 할 때마다 녹음을 하는 것을 권합니다. 이유는 공무원들이 자기가 내뱉은 말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번복할 때가 많으며, 규정에 대해 잘 모르면서 일단 아무 말이나 내뱉고 보는 사람들이 흔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분야의 일이라면, 대화를 반복하면 되지만, 건축/조경의 경우 이미 공사를 해버리면 다시 깨부수고 수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미 공사된 것을 고치게 된다면 비용의 손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증거를 남겨놓아 본인이 어떤 말을 하고 살았는지 다시 들려줄 필요성이 있습니다. 대화 당사자는 원래 녹음해도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그냥 하시고, 나중에 딴 소리할 때 들려주는 것이 좋습니다.
학생들과 업체, 지자체가 함께 일하는 경우 의사소통과 업무 분장에 대해 각별히 유의해야 합니다. 공무원들은 학생들보다 업체 사람들을 더 신뢰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맡은 일도 상의 없이 업체와 알아서 결정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학생들이 먼저 지자체와 협업하기로 되어 있었던 일도 용역 업체가 오히려 주가 되고 학생들이 아르바이트가 되는 식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용역 업체는 공무원들과의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게 하세요. 그리고 모든 게 다 결정된 다음에 용역 업체를 선정하고, 용역 업체와 학생들이 서로 연락해야 합니다. 실제로 저는 대학생 때 지자체 도시 재생 사업과 관련하여 벽화 디자인을 한 적 있는데, 벽화 업체를 끼니까 공무원들이 벽화 업체 의견만 들어주고, 원래는 저희 과 학생들이 시작한 사업이었는데 벽화 업체가 main으로 하고 저희가 아르바이트 비 받는 식으로 결국 바뀌게 되어서 짜증 났던 적이 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난 원인은 저희가 너무 초창기부터 용역 업체와 공무원들을 만나게 해 줬기 때문입니다. 결국 처음 아이디어와 디자인 안을 다 내고, 점점 역할이 축소되다가 원래 받을 수 있는 돈 보다 더 적게 받게 되는 불상사가 벌어지게 되었죠. 괜히 헛수고하고 남 좋은 일만 시켜주지 않으려면, 공무원과 학생 대표끼리만 서로 회의하도록 하세요.
오늘은 공사 현장 보고, 미팅, 회의, 연구 용역 과제, 설계 공모전 당선 등 다양한 상황에서 담당 공무원을 대응하는 방법을 알려드렸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역지사지', 즉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상대방에게 알기 쉽게, 자주, 상대방이 최대한 일하기 편하도록 전달해 주세요. 이러한 과정을 귀찮아하지 않는 섬세한 노력을 수행한다면 당신은 공무원들과 신뢰 관계를 잘 쌓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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